내 삶은 너무나도 하잘것없으니 이딴 건 선물이라고 할 수 없다,

뭐 이런 식의 유치한 전개는 아니다.


그저,


적어도 누군가에게

넌 이 선물을 꼭 받아야 하고, 절대로 거부할 수 없으며,

만약 받기 싫어서 되돌려 준다면 넌 엄청 고통스럽게 죽어야 한다,

라면서 뭔가를 건네는 건 


보통 '선물'이라기보다

'협박'이라고 부른다.

바다에서 해파리를 주식으로 삼는 거북이A가 하나 있었다.

거북이A는 매일같이 물맛밖에 안 나는 해파리를 잡아먹으며 별 생각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거북이A는 해파리가 너무 맛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평생 맛없는 해파리만 먹으며 살다가 죽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주변에 있는 다른 것들을 이것저것 먹어 봤다.

조개, 따개비, 게, 물고기, 기타등등 기타등등.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해파리만 먹어왔기 때문에 입맛이 고정되어 대다수는 맛없었고,

종종 어떤 것들은 소화가 안 되어서 먹고 실컷 토해야 했다.

그나마 좀 먹을 수 있는 것들도 죄다 초장 없는 물회 맛이었다.


물 속에서 먹을 수 있는 걸 다 먹어봤는데 죄다 맛이 없었다.


바닷속이 맛없다면, 육지에 가면 뭐가 좀 다를까?

육지엔 여기랑 다른 뭔가 더 신박한 먹거리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바닷속 먹거리도 맛없는데 아예 이질적인 육지생물이 맛있을지도 모르겠는 상태에서

알지도 못하는 괴수들이 자길 사냥해서 구워 먹을지도 모르는 육지로 나가기엔 확신이 없었다.


솔직히 여기나 거기나 똑같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선택받은 인간들이야 소금도 치고 후추도 치고 먹는다고 하지만,

걔네들 빼고 다른 동물들은 다 거북이가 해파리 잡아먹듯 똑같이 육지생물 먹을 거니까

거북이 몸으로 육지 가 봤자 다른 육지동물처럼 조미료 안 친 생고기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근데 인간들 애완거북이 되는 게 그리 쉬운 일도 아니고,

또 애완거북이 된다고 해도 꼭 맛있는 사료 주리라는 보장도 없고,

또 맛있는 거 줬다고 해도 거북이A가 그걸 토하지 않고 먹을 수 있다는 법도 없는 거다.



이런 고민을 말했더니 혹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 하찮고 이룰 수 없는 욕심은 신경쓰지 말고, 

대신 가족이나 친구, 짝짓기과 자아실현 같은 더 중요한 일로 시선을 돌리라고.


그런데 거북이A 입장에서는

아무리 가족이나 친구와 잼있게 놀아도, 아무리 끝내주는 암컷을 만나 떡을 쳐도,

아무리 노력을 잔뜩 해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거북이가 되어도

어쨌든 자기는 좆같은 해파리를 먹어야만 목숨을 연명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 다 먹고 사는 걸 자기 두개골 안에선 평생 

맛없어서 고통 호르몬 분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게 끔찍할 뿐이다.


심지어 걔네들 만나는 시간보다 뭔가를 먹는 시간이 인생에서 더 길다!

아무리 사람들 만나면서 위안해 봤자 그들 덕분에 내 고통이 사라지진 않는다.


이건 마치 HR. 기거의 악몽과도 같다.

아무리 현실에 돈과 명예와 친구가 넘쳐나도

밤마다 꾸는 끔찍한 악몽 속엔 그것들 중 단 한 가지도 가져갈 수 없다.




또 혹자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거북이들도 다 해파리 좋아하는 거 아니지만 어찌어찌 먹으며 살아간다고, 

그러니 니만 특별하단 마음가짐과 선민사상을 버리라고.


근데 거북이A는 그 말 들으면 존나 기분 좆같고 억울한 것이,

걔는 애초에 '아, 난 특별한 거북이라서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해!'

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단 거다.


그냥 먹었을 때 맛이 없는 건데 거기에 뭔 특별취급이 있고 선민사상이 있단 말인가?


니 입맛엔 삼겹살이 겁나 느끼하고 맛없지만 

주변 사람들 절대다수가 삼겹살 잘 처먹으며 맨날 삼겹살 회식 할 때,

니가 삼겹살 맛없다고 고백했더니 아무도 믿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딴 사람들도 삼겹살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그러니 너도 참고 먹어야 한다고 훈계할 때,


그런 상황에서 소외감 1도 안 느끼냐? 


삼겹살 맛있다는 놈들은 다 나보다 하등하다고 생각해야만 

삼겹살을 싫어할 수 있는가?


그렇게 따지면 자기가 게이라고 커밍아웃하는 사람들은

좋아하지도 않는 남편/아내랑 어찌저찌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 다 개무시하고, 

이성애로 넘쳐나는 이 세계에서 지 혼자만 동성을 좋아하니 

지만 잘났고 특별하다고 생각해서

커밍아웃 하는 거겠네.


거북이A는 그렇게 악의적이고 복잡다단한 의도로 해파리를 싫어하는 게 아니다.

그냥 맛없어서 싫다는 거다.




오히려 거북이A는 자기가 너무 평범한 존재이며,

이 우주 전체에서 비중을 놓고 봤을 때 자신의 의미가 0에 수렴한단 걸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문제를 겪고 있다.


솔직히 해파리가 맛없든지 말든지 신경 끄고 걍 살아갈 수도 있다.

지금까지 맛없어도 잘 먹으며 살아왔으니 그게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다.


그냥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내가 그리 특별하지도 않고, 

꼭 살아야 할 의미가 있지도 않고, 

다른 거북이로 대체할 수 있다면,


내가 앞으로 죽을 때까지 맛없는 해파리 끼니마다 꾸역꾸역 처먹으며

자연사 할 때까지 어거지로 살아가는 것도

알고 보면 의미 없는 일 아닌가?


내가 뭐 그리 특별하다고 그렇게 존나게 존나게 살아가야 하는가?


내가 해파리 열심히 먹어서 장수하면 

'세상에서 맛없는 해파리 제일 많이 처먹다 뒈진 놈'

이라고 누가 상이라도 주는가?




해파리 안 먹으면 살 수가 없고

그렇다고 딴 걸 먹을 수도 없는 상태지만


이젠 해파리 그만 먹고 싶어.


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1. 캔디젤리스윗 2018.01.15 01:58 신고

    마지막 문구가 정말 마음에 들어요. 우리는 감정이 있고 사고를 하고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데 왜 이 사회는 그걸 못하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저는 '너만 그런거 아니니까 참아'라는 말이 참 싫어요. 나도 싫도 너도 싫으면 서로 얘기를 해서 그 상황을 벗어나면 되는데 그걸 못하고 갇혀있게 하니까요. 입에 맞지 않아 좀 토하면 어때요. 거지같은 해파리 말고 다른 건 어떤지 그저 궁금했을 뿐인데 말이죠.

그렇다. 원래 인생엔 의미가 없다.
욕망 뿐인데,
그 욕망이 없어서 재미가 없는 거다.
  1. 노루막이 2018.01.02 10:00 신고

    개인적으로 욕망을 이루기 위한 돈이 필요한데 욕망을 이룰만큼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가 않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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